어쩌다보니 민간의 필수품이 되어버린 군용품들

인류의 역사는 서로를 압도하기 위해 경쟁적인 환경 속에서 계속 발전해왔다.

특히, 군은 국가의 생존 문제를 책임지는 집단이다 보니 경쟁국보다 더 강력하고 획기적인 무기를 획득하기 위해 엄청난 노력을 기울여왔고, 지금도 변한 것은 없다. 그래서 인류의 역사는 전쟁과 매우 밀접하다.

 

재미있는 것은 그 와중에 태어난 수많은 발명이 군과는 상관없는 민간 분야에서 실용성을 찾아 우리 생활에 정착하게 된 사례가 꽤 많다는 것이다.

 

대표적인 것이 전자레인지다.

2차 세계대전이 막바지이던 1945년, 레이더 기술을 개발하던 미국이 우연히 '마이크로웨이브'파를 발견하게 된다.

 

 

이후 특정 주파수대에서 분자들을 움직이면 음식을 조리할 정도로 적당한 열이 발생한다고 판단한 미군이 이를 계속 개발하게 된 것이 전자레인지의 탄생으로 이어진 것이다.

 

 

마찬가지로 인스턴트 음식의 탄생으로 이어진 냉동건조기술도 2차 세계대전 중 의료용 약품 등을 장기 보존하기 위해 발명된 기술이다.

 

한국에서는 일반적이지 않으나 미국에서는 거의 청테이프 수준으로 쓰이는 '덕트 테이프'도 좋은 예다.

 

 

말랑말랑하면서 연성이 높지만 강력한 접착력과 강도를 가진 이 테이프는 원래 탄약상자를 수송하면서 그 뚜껑을 단단히 밀봉하기 위해 개발했던 것인데, 워낙 활용도가 높아 전쟁 내내 군 장비에 다양하게 활용되면서 유명해졌다.

 

흔히 무전기라고 부르는 '워키토키'는 1930년대 캐나다군에 의해 발명됐으며, '지프(Jeep)'의 경우도 원래 2차 세계대전 당시 정찰 용도로 활용하기 위해 개발한 차량을 민수용으로 전환하면서 널리 쓰이게 되었다.

 

 

1차 세계대전에서 항공기가 처음 등장한 뒤 2차 세계대전을 거치면서 항공전이 치열해지자 더 빠른 속도를 얻기 위해 개발된 '제트엔진'은 모두가 잘 알다시피 오늘날 민간 항공분야에서도 빠질 수 없는 존재가 되어버렸다.

 

 

디지털 사진 기술 또한 1960년대 냉전의 산물이다.

미국과 소련이 한창 스파이전을 치르던 시절, 미국은 통칭 '갬빗'이라 불린 'KH-7' 정찰 위성을 통해 촬영한 위성영상사진을 필름 통에 담아 대기권으로 낙하산을 달아 사출시키면 특수 개조한 'C-130' 항공기가 공중에서 낚아채오는 방식을 썼다.

 

하지만 이 방식이 번거로울 뿐 아니라 회수 실패 가능성도 컸기 때문에 필름 통 회수가 필요 없는 사진촬영 방식을 개발하기 시작한 게 오늘날의 디지털카메라 기술로 이어지게 된 것이다.

 

환자가 삼키기만 하면 식도를 따라가면서 내시경 촬영을 할 수 있는 일명 '내시경 캡슐' 또한 이스라엘에서 최초 군 의료용으로 개발했던 것이지만 이후 민간 의료용으로 사용범위를 넓히게 된 역사를 갖고 있다.

 

 

요즘에는 차량용 내비게이션에서도 널리 쓰이고, 민간 항공분야에서도 빼놓을 수 없게 되어버린 GPS는 1970년대 초 미 국방성에서 개발한 발명품이다.

 

우주의 인공위성을 이용해 삼각 측량하여 지상의 정확한 좌표를 찾는 이 기술은 사실 1983년 소련의 대한항공 'KAL 007'기 격추 사건이 계기가 되어 민간에 공개된 이력이 있다.

 

 

만약 GPS 기술이 있었다면 문제의 대한항공기가 좌표를 잘못 잡아 적의 영공으로 들어가지 않았을 수 있었을 것이라고 생각한 레이건 대통령은 군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1983년 이 기술의 부분적 민간 공개를 결정했던 것이다.

 

컴퓨터와 인터넷도 군에서 탄생한 위대한 발명품들이다.

'에니악'이라는 이름으로 발명된 최초의 진공관 컴퓨터는 2차 세계대전 중 탄도 측정을 비롯한 복잡한 연산을 처리하기 위해 군에서 발명되었고, 차츰 소형화되면서 민수화가 된 이력이 있다.

 

 

오늘날 정보검색과 네트워크 연결의 핵심이 된 인터넷 또한 1960년대에 고등연구개발국 DARPA에 의해 'ARPANET'이라는 이름의 군용 내부 정보 공유체계로 개발된 후 1969년을 기점으로 서부지역의 대학들을 선정해 연결을 시작했다.

 

 

이후 여러 개발과정을 거쳐 1991년 월드와이드웹(WWW)의 등장과 함께 상업화가 진행된 후 고성능 가정용 컴퓨터와 다양한 웹 브라우저 등의 개발과 함께 급속도로 상용화되면서 인터넷으로 변모했다.

 

이처럼 많은 물건이 전쟁이라는 극한의 상황 속에서 탄생했지만, 오늘날 우리의 평온한 일상을 위해 없어서는 안 되는 존재가 된 물건들도 있다는 점은 어딘가 아이러니하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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